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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서, 김성칠
김성칠 : 한 사학자의 6.25일기 : 역사 앞에서, 창비, 2007.
1950년 9월 1일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니, 그들은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아하였는가. 인민공화국에 있어서의 끊임없는 남침의 기획과 선전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뚜렷한 사실이고, 또 이미 실천을 통화여 분명히 되고 말았으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으려니와, 대한민국의 요로에 있는 분들이 항상 북벌을 주장하고, 또 더러는 우리의 손목을 붙들고 말리는 사람만 없다면, 우리는 1주일 안으로 평양을 석권할 수 있다고 호언장잠을 되풀이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다만, 이 둘 중에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인민을 채찍질하여 밤낮으로 침공의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고, 하나는 큰소리만 뻥뻥하였을 뿐 사실은 침략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도 게을리하였었고, 또 한편의 종주국은 졸개야 어느 지경에 가든 한번 씨름해보라고 무책임한 지령을 내렸고, 한편 종주국은 사려깊게도 결코 선손을 걸어서는 아니 된다고 손목 잡고 말렸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다른 점은 한편에선 신성불가침의 지령이 내리고 괴뢰가 이를 우러러 받들면 다른 여하한사람이 어떠한 좋은의견이 있더라도 이를 마음대로 발표할 수가 없고, 정부의 관리나 의견이 있더라도 이를 마음대로 발표할 수가 없고, 정부의 관리나 일반시민들은 모두 입부리를 갖추어 "항공무지, 지당혀이다."하고 합창을 하는 수밖에 없으며, 정세 판단이 분명히 그릇되었다고 확산하는 경우에도 그글 주장하려면 먼저제목이 먼저 달아나고 말 것이니, 영명한 우리의 지도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수밖에. 그러면 다른 한편에 있어선 언론 자유의 민주주의 원칙이 확립되었었나 한면 이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조++박사가 서울신문에 북벌 단행론을 당당히 발표하였을때 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많은 대학교수들 중에 과연 한사람이나마 이를 반박한 글을 쓴 사림이 있었나. 원체 무기련한 훈장타성이 그나마 정치에 너무 소극적이어서 이런 일에 객기를 부릴 만한 사람이 없었기도 하려니와, 그때의 사회적분위기가 쓰려면 과연 쓸 수 있었을 것인가.
-190~192
2.
이미 정부의 각계 수사기관이 다각적으로 정비되었고 또 함몰 90일 동안에 적색분자와 악질 부역자들이 기관마다 마을마다 뚜렷이 나타나 있으니 이들을 뽑아내어서 시원히 처단하고 그 여외의 백설들을랑 "얼마나 수고들 하였소. 우리들만 피란하게 되어서 미안하기 비길 데 없소"하여야 할 것이거늘, 심사니 무엇이니 하고 인공국의 입내를 내어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허다하고, 심지어 자기의 벅찬 경쟁자를, 평소에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던 동료들을 몰아내려고 하는 일조차 있다는 낭설이 생기게 끔 되었으니 거룩할진저, 그 이름은 '남하'한 애국자로다.
-252
"부산 역전에서 내가 목격한 일일세. 일선에서 보내온 부상병들이 혹은 팔을 둘러메고 혹은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수십리 길을 걸어가는데 정부 고관들이 그 옆으로 자동차를 호기롭게 타고가면서 그들에게 먼지를 끼얹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없는가보네."
-258
예나 지금이나 높은 분들은 자신들만 잘살겠다고 설쳐된다.
3.
더욱이 내 서재에 버려두고 가는 수없이 많은 책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내 피땀어린 수집의 결과이다. 학교때 점심을 굶어가면서 그 한권 한권을 사모은 것이다. 긴긴 겨울밤, 밤을 패어가면서 그한장하낭 씨름하던 내 손때 묻은 책들이다. 내 상념이 그 페이지 위에 어리고 내 연필이 그 줄 사이게 그어진 것이다. 그는 책들이면서도 내새명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책들을 버리고 정처없이 떠나가는 것이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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